불규칙한 간격으로 심겨 있던 옥수수들이 마침내 사람 키를 웃도는 벽이 되었을 때, 랜들 록스버그와 케일럽 랜킨은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차는 덜컹거리며 제대로 포장되지 않은 도로를 달립니다.
차창 너머 빠르게 지나가던 옥수수 대들이 울창해집니다.
이 주변에 옥수수밭이 있었던가, 어쩌면 핸들을 잡은 손에 그런 의문이 들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 봐야 이미 밭 한가운데에 들어선 다음이었지만요.
유일한 믿는 구석이었던 자동차가 비포장도로 한가운데에 멈추어 서 버린 상황, 황망한 두 여행객.
저녁 노을이 땅을 온통 주황빛으로 물들입니다.
케일럽 랜킨:(조수석 문을 열고 나선다.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 씨발 실화냐?
갑자기 졸리다.
케일럽 랜킨:아⋯⋯ 씨발 구라 치지 마⋯⋯ 진짜?
(황망하게 서 있다.) 진심으로? 여기에서 펑크가 난다고?
랜들 록스버그:(랜들 록스버그, 운전석에서 양손으로 핸들 붙잡고 머리 처박았다.)
(빠아아아아앙. 하는 경적음이 울려 퍼진다.)
(냅다 걸어가서 운전석 문 요란하게 열어 젖힌다.) 나와!
랜들 록스버그:싫어. (경적소리에 다 먹혀들어가는 목소리.)
야. 야. 나와. 안 나와?
아무래도 꿈인 것 같아. 그치?
케일럽 랜킨:(대답 없이 걸어서 조수석으로 돌아간다.)
(글로브박스를 열어 뒤적거린다. 한참 헤집다가⋯⋯)
(손전등을 찾는다.)
(그대로 켜서 랜들의 얼굴에 비춘다.)
랜들 록스버그:우. (뭐라 더 말하기 전에 얼굴에 강력한 빛이 쏟아져서 비명지른다.) 아, 아아아아악.
내 눈!!
눈뽕 미친, 아. (내려온다.)
케일럽 랜킨:좋게 말할 때 나오면 좋았잖아. (좋게 말한 적 없다.)
나와, 빨리. 여기에서 가만히 있는 거 자살 행위니까.
나 아까 봤어. 8000km 앞으로 휴게소 없음.
케일럽 랜킨:그래. 그럼 펑크 난 자동차 붙잡고 전파도 안 터지는 여기에서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될까?
굶어 죽겠지? 어? 이 새끼야. (손전등 달칵달칵달칵.)
그래서? (눈감고 있는다.)
옥수수 따먹자고?
케일럽 랜킨:(손전등으로 한 대 치려다가 말았다.) 하아⋯⋯.
왔던 길로 돌아가야 할 거 아니야.
머리 좀 써라, 머리 좀.
이, 이거 끌고?
케일럽 랜킨:아, 이 새끼. (결국 못 참고 한 대 쳤다.)
걸어 가야 하니까 나와!
랜들 록스버그:(머리 문지르면서 내려온다.) 아⋯⋯.
음⋯⋯.
으음⋯?
아, 몰라. 그냥 가자.
(귀중품만 가방에 바리바리 들고 나온다.)
케일럽 랜킨:이래서 포쉬 쓰는 것들은 안 돼. (쯧 하고 혀 찬다.)
(와중에 가방 보고 어이 없어서 입 벌림.)
아⋯⋯.
하⋯⋯.
(마른세수 존나 한다. 벅벅. 벅벅벅벅.)
이 차 버릴 거야. (앓는 소리 내면서 말한다. 얼굴은 여전히 손에 파묻은 채다.) 더 가지고 나올 거 있어?
(차 안 좀 더 뒤져보다가 물통만 또 꺼내서 가지고 나온다.) 캐리어는 어떡하지?
케일럽 랜킨:그럼 펑크 난 차 밧줄로 묶고 콘필드 가로질러 보든가, 이 새끼야!!
하⋯⋯ 하아⋯⋯ 캐리어⋯⋯ 아, 씨발. 어쩐지 가방을 들고 오고 싶더라니⋯⋯.
아⋯⋯ 너 때문이야. 팔자에도 없는 텍사스를 처 기어 와선⋯⋯, (여전히 손바닥에 고개 파묻고 있다가,) ⋯⋯.
캐리어에 뭐 들었어? 중요한 거 많아?
랜들 록스버그:내 명품옷. 그리고 심심할 때 들을 LP판. 노트북. 닌텐도. 세면도구.
케일럽 랜킨:내 캐리어엔⋯⋯ 옷, 노트북⋯⋯. (손을 꼽다가,) 나도 버려야겠네.
도대체 LP를 왜 챙겨 온 건데?
랜들 록스버그:나중에 다시 이거 수거하러 올까?
아, 아니.
원랜 선생님 댁 가서 들으려고 했지~!! 퀸 한정판이라고!!
랜들 록스버그:(헉. 케일럽 앞에서 영국 뮤지션을 말하는 실수를⋯)
?
퀸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케일럽 랜킨:걔넨 음악을 찐따 같이 만들잖아?
랜들 록스버그:네가 듣는 펑크락이 더 찐따 같은데? (헤비랑 펑크랑 메탈 아무것도 구분 못한다.)
케일럽 랜킨:너 그냥 캐리어 끌고 나와라. 캐리어 끌고 나가다가 탈수로 죽어.
(손전등으로 머리 한 대 더 후린다.)
버려!!
(머리 만진다. 억울한 표정으로 꼴아본다.)
케일럽 랜킨:야. (손전등 던져 주면서 팔짱 낀다.) 따지고 보면 이거 누구 잘못이야.
운전대 잡은 거 너잖아, 이 새끼야!!
그냥 나와!!
따지자면 책자에서 이 차 고른 네 잘못이지?!
케일럽 랜킨:야, 씨발 니가 나보고 고르라매?!
랜들 록스버그:(일단 버리고 나온다. 언젠가 다시 수거하러 올게, 베이비들.)
닥쳐, 정신불안증세로 도로주행 세 번 떨어진 새끼야!!
케일럽 랜킨:(이 새끼 분명
개쓸데없고 영양가없고 의미없고실없고 나랑 아무런상관없는 그런생각 하고 있겠⋯⋯)
⋯⋯.
(*cursing*X3) 나와.
랜들 록스버그:(뀨쀼뀨쀼한 생각하면서 먼저 간다.)
케일럽 랜킨:(⋯⋯
*self-deprecating* 하면서 뒤따라간다.)
주변을 둘러본들 당장 보이는 것은 넓게 펼쳐진 옥수수밭과 길게 펼쳐진 길, 그리고 고장 난 자동차뿐이네요.
큰일 났습니다! 무엇부터 보는 게 좋을까요?
랜들 록스버그:(고장 난 자동차부터 볼까나.)
당신과 케일럽이 타고 온 자동차입니다. 무언가 밟아 타이어에 펑크가 났습니다.
도대체 무엇을 밟아서 펑크가 났는가 하니, 터진 바퀴 아래에 표지판이 하나 깔려 있네요.
랜들 록스버그:(아⋯ 씨발! 표지판 콱콱 밟는다.)
(그리고 돌아나온다. 우리에겐⋯ 역시, 여분의 자동차 바퀴는 없겠지? 트렁크 열어본다. 운 좋게 있을 수 없나?)
행운 판정. 극단적 성공이면 드리겠습니다.
하하.
KP:안타깝게도 없습니다만, 대신해서 당신은
초콜릿 바 두 개를 찾았습니다. 럭키!
랜들 록스버그:후⋯ (일단 챙기고, 하나는 케일럽 던져준다.)
케일럽 랜킨:어? (당황해서 허둥거리다가 받는다.) 뭐야, 트윅스?
랜들 록스버그:트렁크에 있더라. 운 좋은 줄 알아.
케일럽 랜킨:하아. (한숨 푹.) 그래서, 우리 뭐 밟은 거야?
아니, 그렇다고 왜 이걸 여따가 버리고 가? 진짜 짜증 나⋯.
케일럽 랜킨:서부 것들이 원래 그래. (성큼성큼 다가가서 표지판 내려다본다.)
낡아서 녹이 묻어나는 금속 표지판에 진부한 경고문이 적혀 있습니다.
(잠시 정적이다가,) 월요일. 씨발.
하아아아아⋯⋯. (한숨 푹 쉰다.) 가자. 여기에 못 있어.
랜들 록스버그:초콜릿바 두 개로 일주일을 살 수는 없겠지.
(케일럽 랜킨을 위아래로 훑어본다.)
응, 무리야.
왜 갑자기 시비야? (⋯⋯까지 말하고선, 미간을 살며시 구긴다.) 잠깐만⋯⋯.
예민해. 아주 좋아.
케일럽 랜킨:초코바 내놔, 이 새끼야. (JOKE.)
KP:높은 옥수수대. 어디까지 펼쳐진 건지 가늠하기 어려운 밭.
바람이 옥수수밭을 세차게 흔들고 지나가는 와중⋯⋯ 케일럽은 듣습니다.
옥수수밭 안에서 줄기를 헤치고 뛰어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뭐야? (급격히 조용해진다.) 야, 록스버그⋯⋯,
너도 이거 들리지?
뭘 들었는데? (옥수수 밭쪽으로 상체 기울인다.)
KP:그러자 랜들의 귀에도 희미하게, 들리는 것도 같습니다.
무언가 줄기를 헤치고 달리고 있습니다. 분명한 생물이요.
랜들 록스버그:원래 옥수수 밭에 동물 살아? (무지하다.)
케일럽 랜킨:커다란 쥐, 고라니⋯⋯? (깜빡.) 아니, 살긴 하는데.
이렇게 가까이에 있다고? 방금 전까지 우리가 차 몰고 있었는데?
⋯⋯기분 이상해. 야. 나가자. (툭툭 건드린다.) 일단 길가 쪽으로⋯⋯.
랜들 록스버그:혹시 길 잃은 사람인 거 아냐?
케일럽 랜킨:우리 같은 멍청이가 또 있진 않겠지.
랜들 록스버그:(일단 아메리칸 출신 케일럽 말 착실하게 들으며 길가쪽으로 걷는다.)
KP:양옆에 옥수수밭을 낀 커다란 길입니다. 여타의 옥수수밭 사이에 난 길보다 상당히 넓은 편입니다.
저 멀리 길 중앙에 무언가 놓여 있는데⋯⋯ 확인하려면 한참 걸어야 할 것 같습니다.
케일럽 랜킨:(터덜터덜 같이 걸어 나온다.) 가자⋯⋯.
(때맞추어 머리 위에서 까마귀가 난다.) 기분 나빠.
랜들 록스버그:우리 여기 온지 몇 시간 됐지?
케일럽 랜킨:아직 삼십 분도 안 지났어. 해 떨어지기엔 좀 남은 것 같고.
랜들 록스버그:시속 60마일로 30분 왔으니까⋯
어, 음⋯
모르겠다. 그냥 가자. (앞으로 걷기 시작한다.)
케일럽 랜킨:삼십 마일. 오십 킬로미터. 이래서 산술점을 필수 과목에 넣어야 하는데.
(투덜거리면서 따라 걷기 시작한다.)
케일럽 랜킨:머리를 좀 쓰라고. 머리를. (터벅터벅.)
랜들이 짚은 대로, 언제까지나 여기에서 기다리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다행히 길은 넓고, 아직 해가 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넓게 펼쳐진 비포장도로를 터벅터벅 걷다 보면, 바닥에 놓여 있던 '무언가'와 가까워집니다.
온몸의 가죽이 벗겨져 새빨간 근육이 드러난 짐승 사체입니다.
KP:잘 하는 짓이다 임마들아. 둘 모두
2점 차감.
랜들 록스버그:(황급하게 입 막는다.) 우욱⋯
아, 씨발. 별 꼴을 다 보네.
케일럽 랜킨:(따라 헛구역질한다.) 아, 우웩⋯⋯.
씨발, 이게 뭐야? (황망한 낯으로 보다가,) ⋯⋯코, 코요테?
KP:사체의 가죽은 매우 깔끔하게 벗겨져 있습니다. 근육 등의 손상이 보이지도 않습니다.
KP: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여요.
자연스럽게 이런 식으로 벗겨졌을 수는 없습니다.
사체 주변의 흙바닥에 고인 핏자국은 옥수수밭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방금 죽은 듯 맑은 붉은 색인 살갗과 다르게, 그 안은 시커멓게 타들어가 있습니다.
랜들 록스버그:근데 이걸 왜 여기에 떨구고 가, 아 미친⋯.
잠깐만⋯ ⋯.
이거 방금 죽인 것 같은데?
케일럽 랜킨:(멍청한 얼굴이 된다.) 뭐라고?
랜들 록스버그:오래된 시체가 이렇게 새빨간 색일 리가 없잖아.
케일럽 랜킨:아니, 그냥 피가 제때 안 빠져서 그런 걸지도 모르잖아. (다소 날카로운 목소리를 낸다. 공격보다도 반사적인 방어기제에 가깝다.)
랜들 록스버그:그런가? ⋯그렇지만 핏자국도 안 말라붙어있고.
랜들 록스버그:무엇보다 이걸 도살하고 버린⋯ (그리고 케일럽 랜킨을 본다. 곧장 입을 다문다.)
(랜들을 무언가 생각을 하다가 관둔다.) 알겠어. 일단 거지.
케일럽 랜킨:(그건 아주 현명한 선택이었다. 케일럽 랜킨은 곧 깨질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으므로.)
가자⋯⋯ 토할 것 같아.
당신들의 눈앞엔 왼쪽과 오른쪽으로 나뉘는 갈림길이 있습니다.
어느 방향에서건, 바람에 흔들리는 옥수수 소리만 세차게 흘러듭니다.
케일럽 랜킨:(잠시 정적이었다가,) 따로 가자고 할 거 아니지?
어, 어떻게 해?
케일럽 랜킨:(와중에도 그는
다행이다, 하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갈라지자고 하진 않겠구나⋯⋯.) ⋯⋯우리 말이야.
분명 오른쪽 길에서 진입했지? ⋯⋯.
기억 안 나. 네가 맞겠지?
난 운전했고⋯ 네가 봤잖아?
케일럽 랜킨:(
지금 내게 책임 전가하는 거야? 같은 소리를 하기엔 당장 탈출이 절실하다. 잘 도려낸 짐승 사체는 확실히 케일럽 랜킨의 취약한 정신에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오른쪽.
오른쪽으로 가자.
오른쪽이 맞는 것 같⋯⋯,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경련한다.) 씨발 어디든⋯⋯.
랜들 록스버그:(그래! 케일럽을 믿고 오른쪽으로 가자.)
이곳에서 더 시간을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니 어쩔 수 없지요.
⋯⋯바람이 옥수수밭을 세차게 흔들고 지나갑니다.
좌우가 구별되지 않는 옥수수밭을 한참 걷는 동안, 옥수수 이파리는 계속해서 규칙적으로 흔들렸습니다.
소리라곤 바람 소리와 짐승 우는 소리뿐입니다.
오오.
KP:다시,
가까운 곳에서 풀을 밟는 소리가 들립니다.
당신이 발걸음을 멈추면 그 소리도 멈추고, 당신이 다시 걷기 시작한다면 그 소리도 다시 걷습니다.
당신이 뛰면 그 소리 역시 뛰고, 당신이 발소리를 죽이면 그 소리도 발소리를 죽입니다.
그것은 집요합니다.
그러나 재촉하지 않습니다.
둘 모두 이성치 체크 진행합니다.
그리고, 랜들.
당신은 생각보다 쉽게 소리의 근원─혹은 흔적을 발견합니다.
여태껏 당신들이 걸어온 길을 따라, 옥수수 대에 피가 묻어 있습니다.
당신의 한 걸음 바로 뒤, 곧게 자란 옥수수 대에서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당신의 동행인이, 아주 조용히 당신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랜들 록스버그:⋯ ⋯ ⋯. (하염없이 그 핏자국에 시선이 고정되어 있다.)
(고개는 돌아가지 않는다.) 왜?
랜들?
랜들 록스버그:왜, 왜. (이제야 돌아봤다.)
손목이 가려운 듯 연신 긁고만 있을 뿐, 방금 전에 당신을 부른 사람으론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랜들 록스버그:뭐, 뭐야? ⋯ 왜 그래, 너.
하지 마. (손 붙잡는다.)
케일럽 랜킨:(오른손으로 왼손목을 긁어대고 있었다. 손톱 밑엔 벌써 살점이 조금 꼈고, 핏방울이 송골거리며 맺히고 있었다.) ⋯⋯.
⋯⋯어? (고개를 든다.) 어, 어?
어? (다시 고개가 떨어진다. 시선이 랜들의 손에 간다.)
(그리고, 붙잡힌 자신의 손에.) ⋯⋯.
⋯⋯어, 어라?
나 지금 뭐 하는, (고개를 든다. 케일럽 랜킨이 랜들 록스버그를 바라본다⋯⋯)
랜들 록스버그:아, 아 진짜 미친⋯ 미친 놈아.
(손 잡아채서 상처 확인한다. 그리고 급하게 갖고 있는 손수건으로 케일럽의 손목을 묶는다.) 너 좀⋯!!
케일럽 랜킨:(그럴 동안 케일럽 랜킨은 가만히 있었다. 다소 넋 나간 얼굴이었다.) ⋯⋯.
자, 잠깐만⋯⋯, (매듭. 압박감이 느껴진다. 뒤늦게 입을 연다.) 이거 내가 한 거야?
손목⋯⋯.
랜들 록스버그:대꾸해주는 대신에 눈을 마주친다.) 정신 좀, 차려⋯.
나 진짜로 무섭거든.
케일럽 랜킨:내가 한 거 아니⋯⋯, (까지 말하고서, 멈춘다. 녹색 눈. 푸르스름한 눈.)
⋯⋯가, 가야겠어. (호흡이 조금 흐트러진다.) 가자.
여기에 더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오십, 오십 킬로미터니까, 중간에 쉰다 해도 넉넉하게 열두 시간이면⋯⋯.
(손 내민다.) 잡고 가. 너 불안해서 미치겠어.
(대꾸하는 대신에 잡는다.) 토할 것 같아.
여기 이상해. ⋯⋯, (흘끔.)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거 아니지? 응?
랜들 록스버그:몰라. 생각하지 마. 이상하면 어떡할 건데.
(깍지까지 얽는다. 손가락을 고정해 둘 심산이다. 겨우 앞으로 걷기 시작한다.)
손을 붙잡은 채 걷기 시작합니다. 옥수수밭에서 나는 바람 소리.
그렇게 맞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 한참을 걷다 보면⋯⋯
챙이 넓은 밀짚모자를 쓴 그는 누군가를 기다리듯 가만히 서 있습니다.
그것은, 당장 나가는 길을 가르쳐 줄 농부가 아니라.
말 그대로 '입꼬리가 귀에 닿도록' 활짝 웃고 있는 그 허수아비는 목에 팻말을 걸고 있으며, 단단한 쇠파이프에 삭아가는 밧줄로 묶여 있습니다.
밀짚모자에 얼굴이 가려져 코 위로는 보이지 않지만, 그 입꼬리만은 뚜렷하게 보입니다.
아니다⋯⋯ 이래도 너는 실패구나
그냥 내가 떠안아주마
KP:랜들은 이성 변화 없음, 케일럽
1점 차감.
정신 차려.
(미간을 팍 구긴다.) 너⋯⋯,
저게 진짜 그냥 허수아비로 보여?
(그렇게 말하면서도 힐끗⋯ 허수아비를 한번 더 돌아본다. 불쾌하기 짝이 없다⋯⋯.)
KP:보랏빛으로 변색된 피부, 다 떨어지기 시작한 옷.
짚을 엮어 옷을 만든다고 해서 이와 같은 살갗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한번 더 돌아보는 순간 깨닫습니다.
이건 사람으로 만든 것입니다.
둘 모두 이성치 체크.
케일럽 랜킨:(낯이 창백하게 질린다. 이런 걸 예상하진 않았다.) ⋯⋯그냥 허수아비 맞아?
응? 맞지⋯⋯?
케일럽, 하루만에 이성 수치 25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5점 이상의 이성을 잃어 장기적 광기 상태에 진입합니다.
와... 치고 나니까 개깝깝함
랜들! 고생 좀 해라!
케일럽 랜킨:그래도 광기 상태에선 이성 더 안 잃죠?
개이득이죠?
케일럽이 얻을 광기의 발작은 두구두구~
오~
케일럽은 지금부터 광기의 발작: 집착증을 얻습니다.
하여간에 이 발작은 1D10라운드간 지속되나, 현재 라운드 처리를 하고 있지 않은 관계로 예외적으로 시나리오에서 세 개의 챕터가 더 지날 때까지 유지됩니다.
아 이건 좀 웃기다 다른 거 하자.
아 이게 더 웃기네 시발
참고로 98은 끈에 대한 집착이고 5는 고양이에 대한 집착입니다
KP:웃기니까 둘 다 패스하고 랜들을 희생시킬게요, 집착증의 대상은
랜들로 고정합니다.
KP:아무튼 그래서⋯⋯ 지금부터
3챕터 동안, 케일럽은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랜들이 없으면 안 된다는
강박에 가까운 집착을 얻습니다. 단순히 랜들과 함께 빠져나가야 한다, 는 감정이 아닙니다.
이 광기의 발작이 지속되는 동안 케일럽은 절대로 랜들에게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를 무시하고 억지로 떨어지거나 떨어뜨려 놓을 시⋯⋯
가자⋯⋯ 토할 것 같아⋯⋯. (손을 확 잡아끈다.)
랜들 록스버그:(케일럽 랜킨에게 손을 붙들린 채로⋯ 허수아비와 케일럽을 번갈아 가며 보다가, ⋯⋯ 더 말하지 않고 끌려간다.)
야⋯ ⋯.
케일럽 랜킨:속 울렁거린다고. (잡은 손에 힘을 준다. 마디끼리 잘못 맞물려 욱신거리기 시작한다.) 토할 것 같다니까.
별 거 아니야. 내, 내가 알아.
나가야 할 거 아냐!
⋯ ⋯ ⋯.
앞으로 가. 따라갈게.
케일럽 랜킨:화 안 냈어! (목에 핏대가 선다. 불안한 정서가 여실히 드러난다.) ⋯⋯.
(고개를 돌린다. 성큼성큼 앞서 걷기 시작한다. 급작스레 보폭이 넓어져 기묘하게 끌고 움직이는 꼴이 된다.)
실화냐 진짜
하하하
KP:바람이 옥수수밭을 세차게 흔들고 지나갑니다. 그것 외엔 무엇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둘이 다소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걷던 와중.
어떤 전조도 없이 모든 옥수수 줄기가 부자연스럽게 기울어집니다.
무언가에 눌린 모양새입니다만, 어떤 옥수수도 눌려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옥수수 줄기는 심하게 휘어 당신들의 시야를 넓힙니다.
고개 숙인 옥수수 위로 몇 개나 되는 사람으로 만든 허수아비가 검게 빛납니다.
아까 본 허수아비가 파이프에서 떨어져 옥수수 하나를 누르고 있는데, 어쩐지 당신을 쳐다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무게 중심이 기운 허수아비가 소리 없이 바닥으로 떨어지자,
그러자, 다시 옥수수밭이 원래대로 돌아옵니다.
그렇게 모든 옥수수들이 일제히, 잘 훈련된 군인마냥 고개를 숙였다 돌아서고 나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햇빛에 주홍빛이던 벌판이 검게 물듭니다.
KP:랜들, 마침 당신에게는 아까 케일럽에게서 받았던
손전등이 있습니다.
사용하는 편이 좋을 것 같은데, 어떡할까요?
(손전등 바로 켠다.)
KP:건전지가 닳았기 때문일까요? 몇 번 두드리고 나서야 손전등은 불을 밝힙니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당신의 앞에서 당신을 이끌던 케일럽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지금껏 걷던 길도 보이지 않습니다. 앞에도, 뒤에도.
당신과 고작 두 걸음 떨어진 곳에서부터 옥수수밭이 시작됩니다.
아⋯ 아씨.
타의 섞인 고립. 날은 저물었고, 주변엔 광원이라곤 없습니다.
바람 소리. 그리고 여태껏 당신을 쫓아오던 것이 옥수수를 헤치고 걷는 소리가 들립니다.
그리고⋯⋯
랜들!
저 뒤에서부터 다급히 당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립니다.
랜들 록스버그:(신경이 경직되었다 풀리는 느낌. 몸은 사고를 하기보단 즉각적인 반응을 취했다. 곧장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돌아본다. 식은 땀이 흐르고 있다.)
⋯ ⋯랜키, 케일럽?
케일럽⋯!?
목소리는 먼 듯 가까운 듯 위치를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분명 지금껏 걸어 오던 길은 폭이 넓었는데, 지금 당신에게선 고작 두 걸음 떨어진 길에 옥수수밭이 있습니다.
발을 잘못 디딘다면 옥수수밭 안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 순식간일 겁니다.
거기에 있어?
이제는 아주 가까운 곳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리고,
타이밍 좋게, 당신이 들고 있는 손전등의 불빛이 뚝 나가 버립니다.
끝내주네요. 이제 소리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어요.
랜들.
거기에 있냐고.
(숨 들이킨다.) 야, 너⋯!!
어디 있는 거야, 지금!?
⋯⋯바람이 옥수수밭을 세차게 흔들고 지나갑니다.
KP:랜들,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하겠습니까?
옥수수 밭 안쪽?
케일럽 랜킨, 내 목소리 들려⋯!?
너 거기에 있구나.
혼자 가버린 줄 알고 걱정했어.
이쪽으로 와.
길을 찾은 것 같아.
랜들 록스버그:야, 표지판에⋯ 옥수수 밭 안쪽으로 가면 안 된다고 써있었잖아.
너무 위험해. 빨리 돌아 나와, 너.
이런.
기억하고 있었네⋯⋯.
그때, 계속 말썽이던 손전등의 불이 들어옵니다.
가죽이 벗겨져 두개골이 그대로 드러난 짐승의 머리를 바로 눈앞에서 마주합니다.
그것이 당신을 눈꺼풀 없는 눈으로 바라봅니다.
케일럽 랜킨?:한 걸음만 더 들어오면 됐는데⋯⋯.
아쉽다.
씨, 씨발⋯ 미친 새끼.
미친, 미친⋯ 씨발.
가죽 벗겨진 짐승은 케일럽 랜킨의 목소리를 냅니다.
그러나 당신에게 '물리적인' 위해를 끼치지는 못했습니다.
KP:랜들, 당신은 앞으로 갈 수도 있고 뒤로 갈 수도 있습니다. 어디로 가건 여기엔
완벽한 옥수수와 가죽 벗긴 짐승만이 있을 뿐이니까요.
어느 방향으로 걸어 볼까요?
씨발, 케일럽 랜킨⋯!!
너 어디로 갔어!!
안 들려?! 들리면 대답해!!
랜들 록스버그:아, 씨발 이 새끼는 정작 중요한 순간에⋯ ⋯.
⋯ ⋯ ⋯.
(옷깃을 단단히 여미고 일단⋯ ⋯)
(일단 앞으로 나아간다.)
제멋대로 깜빡이는 손전등. 사라진 동행인과 그의 목소리를 내는 가죽 벗겨진 짐승.
참 신기하게도, 제법 오래 걷는 동안 당신은 전혀 목이 마르지 않았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다리도 아프지 않고, 당연한 피로감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당신은 저 멀리에 주저앉은 인영을 발견합니다.
징그럽게 집요한, 두어 걸음 떨어진 풀숲 사이에서 당신을 쫓아오는 기척도 여전합니다.
그리고 새롭게 느껴지기 시작한 피 냄새까지도.
랜들 록스버그:(이마를 조금 문지르고 간다.)
(버릇처럼 헛기침하면서⋯)
어차피 마땅히 갈 곳도 없고, 이제 와서 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이마를 조금 문지르고 버릇처럼 헛기침하고, 계속, 계속 걷다 보면,
옥수수밭을 등지고 웅크린 케일럽은 아주 희게 질린 얼굴을 하고, 자신의 손목을 벅벅 긁어 대면서 주저앉아 있습니다.
이쪽도 무난한 시간을 보내진 못한 모양입니다.
야, 야⋯!!
케일럽 랜킨!!
(바로 뛴다.)
케일럽 랜킨:(빛이 쏟아진다. 눈이 부셨다.)
(그러나 그보다 본능적으로 반응한 것은 청각이다.)
(나는 이 목소리가,) ⋯⋯.
(누구의 것인지 안다. 고개가 번개처럼 돌아간다.) ⋯⋯너,
너, 너, 래, 랜드⋯⋯, (그는 놀랄 정도로 빠르게 몸을 일으킨다.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도 잊은 채 뛰기 시작한다.) 너⋯⋯,
너 어디 갔었어, 씨발!
랜들 록스버그:(바로 뛰고,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지면, 걸음이 멈출 줄 몰라 부둥킨 채로 엎어진다. 팔꿈치에 굉장한 통증이 느껴졌다. 뭐, 아무래도 좋다.) 야⋯!! 씨, 씨발.
난 진짜 네가 뒤진 줄 알고⋯!!
케일럽 랜킨:(뒹군다. 부둥킨 채로, 이 기나긴 흙바닥을. 안 그래도 초췌했던 몰골이 아주 엉망이 된다.) 너, 네가⋯⋯ 네가 먼저⋯⋯ 네가 먼저 사라졌잖아!
나는 네가 어, 어디 가 버린 줄 알고, 씨발 혼자서 가 버린 줄로만⋯⋯.
그렇게 다시 만난 둘이 서로가 '진짜'임을 확인한 순간,
하늘을 날던 새가 수직으로 바닥에 추락해 터집니다.
역시나 가죽이 벗겨지고 속이 싸그리 탔습니다.
이제, 어떻게 날 수 있었느냐는 근원적인 질문에 앞서, 무엇보다도 '왜' 라는 의문이 먼저 고개를 듭니다.
둘을 비추는 것은 별이었습니다. 하늘에 있는 유일한 별이요.
그것은 초승달 모양으로 부풀다 완전한 원형으로 변하고,
(To 케일럽 랜킨): 당신은 하늘 위에서 당신을 내려다 보는 시선과 눈이 마주칩니다.
새카만 눈동자 안에는 형언할 수 없는 것들이 담겼습니다.
어쩌면 여기는 밤이 된 것이 아니라, 거대한 무언가의 그림자가.
케일럽 랜킨:(그렇게 부둥켜 안은 그 상태 그대로, 케일럽 랜킨이 헛숨을 들이킨다.)
⋯⋯눈.
눈이다.
저거 눈이야.
저 달, 저거. 달이 아니라.
무언가가 우릴 보고 있어.
(고개 들어 올려다 본다.)
KP:그러자 랜들도, 이제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하늘 위에서 당신을 내려다 보는 시선과 눈이 마주칩니다.
새카만 눈동자 안에는 형언할 수 없는 것들이 담겼습니다.
어쩌면 여기는 밤이 된 것이 아니라,
거대한 무언가의 그림자가.
랜들, 이성치 체크.
KP:1점 차감. 과연 랜들 록스버그는 케일럽 랜킨에 이어 장기적 광기에 걸려 버릴 것인가!
오?
새끼 ㅋㅋ
이제 당신들이 있는 곳은 땅에 온갖 우그러진 철골이 박힌 곳입니다.
KP:랜들, 케일럽, 당신들은 이제
미지의 공간에 있습니다.
이곳엔 여러 기계가 있는데, 버려진 지 오래된 듯 제대로 작동하는 설비는 없어 보입니다.
밭과 부자연스럽게 어울리는 기계 설비는 누가 봐도 옥수수를 키우는 데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더하여! 이 챕터에서부터 케일럽의 광기의 발작이 해제됩니다. 케일럽은 잠재적 광기 상태에 진입합니다.
케일럽 랜킨:⋯⋯. (앓는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킨다.) ⋯⋯이게, 다 뭐야?
우리 텍사스 콘필드에 있었던 거 아냐?
모르지. 야, 미국이잖아.
네가 알아야 하는 거 아냐⋯? 나 처음 와봤다고.
케일럽 랜킨:씨발, 텍사스에서 시카고까지 기차로 24시간이 넘어! (발칵 소리친다.)
어떻게 알아! 내가⋯⋯, (불안과 공포는 으레 신경을 벼려 둔다. 목소리가 심하게 갈라진다.) 여기에 뭐, 뭐가 있는 건지, 우리가 왜 이런 곳에 있는 건지⋯⋯.
네, 네가 운전해서 들어온 곳이잖아. 너 아는 거 없어? 뭔가 이상한 표지판을 봤다든가⋯⋯.
(표지판? 표지판⋯ 그러니까,)
그, 옥수수 밭으로 들어가지 말라던 그거?
케일럽 랜킨:젠장, 그딴 거 말고! 그건 세상 어느 콘필드에 가도 있는 거잖아, 이 멍청한─
머리 위에서 흔들리던 철골이 그대로 추락합니다.
KP:그 모습을 본 케일럽은~
이성치 체크. 또 발작 시작하시겠네요 축하드립니다!
시발 너무 조금 차감하는 거 아냐?
하여간에, 발작이 재개됩니다. 이 발작은 시나리오 종료 시까지 지속됩니다.
당신은 새빨간 피가 바닥에 후두둑 쏟아지는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당신의 손목을 잡고 있는 케일럽의 손은 어쩐지 소름 끼치게 차갑습니다.
고통이 정신을 아득하게 합니다. 이 피는 모조리 당신의 것입니다.
어쩐지, 당신이 결코 죽지 않을 것만 같다는 어떤 불길한 자각.
상처의 크기는 둘째치고 출혈량만 봐도 분명히 죽을 정도의 상해인데, 당신의 숨은 끊어지지 않습니다.
당신은 철골에 꿰뚫린 그대로 있습니다. 여전히 살아 숨 쉬면서!
너, 너⋯⋯.
랜들. 래, 래, 랜드, (호흡이 심하게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랜들?
(뒤늦게 내지른다.) 씨발, 아, 잠시만⋯.
케일럽 랜킨:(도리어 숨을 멈춰 버린 것은 이쪽이다.) 너, 너, 너⋯⋯ 너.
너 어떡, 어, 어떡, 어떡해야, 너, 너⋯⋯.
너⋯⋯. (단어가 와해된다. 그는 심하게 떨고 있다. 동공이 수축해 거의 바늘구멍에 가까워진다. 노골적으로 패닉한 채,) 너 사, 사, 살아 있어?
랜들 록스버그:잠깐, 잠깐, 우⋯ (덩어리감이 있는 피를 토해낸다. 웨엑⋯) 씨발, 골, 골 울리니까, 말 걸지 마⋯⋯⋯.
아⋯ 씹. 아아악⋯ 이, 이거 뺄 수 있어?
케일럽 랜킨:(랜들 록스버그가 토해낸 핏덩어리는 케일럽 랜킨의 신발에 쏟아졌다. 그의 발이 당신의 피로 엉망이 된다.)
(케일럽 랜킨은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멍하니 당신을 바라보다가, 우는 듯한 소리를 내다가,)
(그러다가 박힌 철골을 두 손으로 움켜쥔다. 후들거리면서.) ⋯⋯.
빼, 빼라고? 이거⋯⋯?
랜들 록스버그:어⋯ 씨발⋯ ⋯ 이거 달고 다닐 수는 없잖아⋯ ⋯ 아아아. (고통은 요란하고, 적나라하게 느껴진다. 정신이 몽롱한데 끊기지 않으니 미칠 노릇이다.)
케일럽 랜킨:(숨을⋯⋯ 쉴 수가 없다. 도리어 정신이 끊어질 것 같은 것은 이쪽이다.)
(그는 아까부터 제대로 호흡하고 있지 않다. 거의 정신 나간 사람처럼 벌벌 떨면서 철골을 쥔 채, 돌아버린 것처럼 숨을 몰아쉰다.)
(그런데 어떻게 살아 있지? 하는 생각이 잠시.)
(그러나 금세 흩어진다. 아아아. 하는 소리. 이대로 두면 죽을지도 몰라.)
(후들거리는 손이 아주 천천히, 또 조심스럽게, 박힌 철골을 잡아당겨 뽑아낸다.)
그렇게 당신을 관통한 철골이 마침내 빠지고 나면,
저미는 고통은 서서히 가시고 혼곤한 정신은 조금씩 명료해집니다.
느리게, 하지만 확실하게 당신은 멀쩡해집니다.
케일럽 랜킨:(그리고선 뒤로 주저앉는다. 여전히 랜들 록스버그의 피로 흠뻑 젖은 철골을 양손에 목숨줄처럼 쥔 채.)
랜들 록스버그:허, 헉⋯. (철골을 뽑아내면 곧바로 이쪽도 뒤로 쓰러진다. 머리가 핑글핑글 돌고 있는 기분. 눈이 저절로 감긴다. 랜들은 송글송글 맺힌 식은 땀을 닦아냈다.)
⋯ ⋯ 졸려.
(케일럽 랜킨은 엉금엉금 기어서, 여전히 죽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죽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랜들 록스버그에게로 다가간다.)
(그의 손은 당신의 피로 흠뻑 젖어 있다.) 래, 랜들.
자지 마.
자지 마. 지금 잠들면 안 돼.
안 된다고⋯⋯ 제발. (황급히 양손으로 당신의 양 뺨을 잡아챈다. 핏자국이 옮겨 붙는다.) 자, 자지 마.
육체의 상처가 해소될지언정 정신적 피로는 고쳐지지 않습니다.
다리가 무거운 것 같은 '기분'이 들고 머리가 아파 오는 '느낌'이 듭니다.
이곳에서 얼마나 헤맸는지 알 수 없고, 앞으로 무슨 일을 더 당할지 알 수 없습니다.
그 와중에도 사방에서 다시 들리기 시작한 목소리.
당신은 무척 졸리고, 눈앞의 케일럽은 반쯤 정신이 나가 있는 상태라서, 지금 당신을 부르는 저 목소리가 가죽 벗긴 짐승의 울음인지 바로 앞의 케일럽의 것인지 잘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미약한 바람 한 번에 모든 옥수수밭이 거세게 흔들립니다.
성대를 모방한 핏덩어리가 당신의 이름을 부르짖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랜들 록스버그:(흐리멍덩한 정신이⋯ 정신을 붙든다. 상체를 일어난다.) 래, 랜킨.
소⋯ 리.
소리 들려? 저거⋯ 네 목소리야.
너도 들었어?
잠깐, 내 목소리라고?
네 목소리가 아니라?
아, 진짜, 개같은 경우가⋯.
⋯ ⋯ ⋯.
(뒤늦게 눈치챈다.) 자동차⋯.
응? 자동차가 왜 있지?
케일럽 랜킨:(그의 신경은 다른 데 쏠려 있다.)
안 잘 거지?
응? 잠, 잠 깬 거지?
랜들 록스버그:(케일럽의 따귀를 철썩 내려친다.)
야.
저거⋯.
저거 나만 보여?
(자동차 가리킨다.)
케일럽 랜킨:(세찬 파찰음. 고개가 돌아간다.)
(천천히 돌아온다. 그는 욕지거리를 내뱉는 대신에 순순히 시선을 돌린다.) ⋯⋯.
보여.
자동차.
중요하지 않아. 너 안 잘 거라고 이야기해⋯⋯.
죽⋯⋯ 죽지 마. 응? 정신 차려⋯⋯.
랜들 록스버그:(그 말에 대답도 없이 몸을 완전히 일으킨다. 그리고, 앞으로 걷는다.)
(무언가 이끌리듯이⋯ 하늘에서 내려온 거미줄을 잡아채듯이⋯ ⋯ 혼자 자동차를 향해 다가간다.)
케일럽 랜킨:랜들. 잠시, 잠시만. (그는 허겁지겁 몸을 일으킨다. 당신을 좇는다. 망설임이라곤 없다.)
(무언가 이끌리듯이. 하늘에서 내려온 거미줄을 잡아채듯이.)
KP:자동차입니다. 당신들이 타고 온 바로 그것 말입니다.
케일럽이 뒤져 조수석의 글로브박스가 열려 있고, 운전석 옆엔 당신이 마시던 커피 테이크아웃 잔이 있는 바로 그 자동차입니다.
둘 모두 자동차에 도달했습니다. 무엇을 할까요?
(먼저 운전석으로 들어가 차문을 닫는다. 조급한 손길로 안전벨트도 맨다.) 이건 기회야. 이런 행운은 다시 찾아오지 않아.
케일럽 랜킨:(랜들 록스버그는 대체로 그를
랜킨이라고 부른다.)
(그가 케일럽이라고 부를 때, 그래서, 케일럽 랜킨은 심장이 뻐근해진다고 느끼고, 숨이 답답하다고 느끼고, 가슴이 옥죄인다고 느낀다.)
(말도 안 된다고 느낀 말에 반발하지 않은 건 그래서다. 그러니까⋯⋯)
(행운이라고 말했다. 케일럽 랜킨이 뛴다.)
(조수석의 차 문을 열고, 황급히 뛰어든다.) 이대로 밟자고?
바, 밟는다고?!
랜들 록스버그:(뭐라 대답하는 대신, 차문이 닫히면 시동을 건다. 기어를 변환한다. 헛손질을 두 번하며 조정했다. 백미러를 고쳐서 후방을 확인했다.)
(그대로 액셀을 밟는다.)
길을 따라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옥수수밭을 짓밟을까요?
야, 케일럽 랜킨.
케일럽 랜킨:(둘 모두 안전벨트조차 하지 않은 채다. 케일럽 랜킨의 신발은 랜들 록스버그의 피로 엉망이라, 바닥이 온통 더러워져 있었다.)
⋯⋯어.
안 믿고 싶어.
그런데, 씨발⋯⋯. (제 머리를 헤집는다. 피로 끈적한 손이었던 탓에 머리칼에 당신의 피가 옮겨 붙는다.)
너는 결국엔 바라는 걸 얻잖아⋯⋯.
랜들 록스버그:⋯역시 그렇지? (양손이 핸들을 꽉 붙든 채로 아슬아슬한 운전이 이어진다.)
그럼 이번에도 믿어.
어차피 내가 실패했다면, 너는 더 안 됐을 거니까.
(액셀을 밟은 발에 힘을 준다. 1)
(핸들을 꺾어 옥수수 밭을 짓밟으며 나아간다.)
단 하나의 옥수수 줄기가 휘는 순간 동시에 모든 옥수수가 고개를 숙입니다.
남자 둘을 태운 차체의 무게가 옥수수를 꺾자 광활한 땅이 함께 꺾입니다.
단 한 번 핸들을 돌렸을 뿐인데, 땅은 멀끔하게 제초되며 마침내 엿같이 넓었던 옥수수밭의 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 사이에서 죽어 매달려 있던 수많은 사람들과, 누군가 제 영역 안에 들어오기만을 기다린 가죽 벗긴 짐승들이 아가리를 쳐듭니다.
전부 꺾여 황량해진 토지의 삿된 것들이 일제히 달려들지만,
그렇지만 당신들은 차에 타고 있고, 이전에는 없었던 길이 있습니다.
당신은 엑셀을 밟고, 흙먼지가 거세게 일고, 멈추었되 고장나지 않은 차는 빠른 속도로 달려나갑니다.
그렇게 달려드는 짐승들을 모조리 물리치는 동안엔 어떤 해방감마저 느껴집니다.
콘벨트의 시작을 알리는 표지판을 지나고 나면,
다시 뒤를 돌아 보았을 때, 옥수수는커녕 풀 한 포기 없는 황야만 있었습니다.
랜들 록스버그의 행운으로, 케일럽 랜킨의 믿음으로.
완벽했던 옥수수와 가죽 벗겨진 짐승들 사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