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지 못했던 나날의 연속, 그러나 불현듯 찾아온 평화의 밤.
눈 뜨지 못하더라도 나는 너를 알아볼 수 있어.
당신들이 현재의 집으로 이사한 지가 벌써 한 달째입니다.
무리 없이 적응하여 잘만 지내던 당신과 달리, 케일럽은 이사를 온 후부터 점점 잠을 설치는 듯싶더니 신경을 바싹 곤두세우고 지내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대화를 시도해도, 병원을 가도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고, 스트레스성이니 제대로 잘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라는 것이 처방의 전부였습니다.
최근 며칠 동안엔 그 불면 증세가 더욱 심해져, 그는 밤을 꼬박 지새우는가 하면 겨우 든 선잠마저 두어 시간을 못 채우고 화들짝 놀라 깨어 버리곤 했는데⋯⋯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찾아온 조용하고 평화로운 밤입니다.
케일럽이 드디어! 깊은 잠에 빠지는데 성공했기 때문이죠.
당신보다 먼저 잠들어 깨어나지 않고 있는 모습은 감격스러울 정도로 오랜만입니다.
KP:그 옆에서 랜들,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랜들 록스버그:⋯. (헙. 무심코 헉 소리가 나올까 입 틀어막는다.
다시 깨면 곤란해⋯)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너무 감격스러워서⋯)
(몸을 살짝 기울여 숨죽이고 자는 애인을 멀뚱멀뚱 눈에 담는다. 너무 뚫어져라 쳐다봐서 가위 눌리겠다.)
(⋯핫. 죽은 건 아니겠지? 케일럽 코에 손가락 살짝 대본다.)
케일럽 랜킨:(다행스럽게도 그는 깨어나지 않았다. 여전히 눈을 감은 채고, 드물게도 표정은 완전히 풀려 있다.)
(규칙적인 숨이 당신의 손가락을 간지럽힌다.)
(아아아⋯ 정말 귀엽네. 웅크리고 자는 게 여자애 같아. 라고 생각만 했다.)
(머리통에 가볍게 입 맞추고 오늘은 나도 자자!)
KP:확실히 늦은 시간입니다. 간만에 맞은 평화는 당신마저 긴장을 풀어 노곤하게 만듭니다.
게다가 내일의 출근을 위해서는 슬슬 자야 할 시간이에요.
무거운 이불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에도 그는 깨어나지 않았고, 덕분에 당신은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침대에 누울 수 있었습니다.
푹신한 베개에 머리를 얹자 금세 잠이 쏟아집니다.
그런데, 그렇게 당신이 그대로 잠들어 버리려던 차.
이 시간에 전화를 거는 미친놈이 대체 어디 사는 누구인지는 몰라도, 하여간에 한번 시작된 수신음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시끄럽게 울려댑니다.
케일럽 랜킨:⋯⋯. (잠결에 미간을 팍 구긴다.)
(뒤척거리기 시작한다.)
(휴대폰 후다닥 잡아챈다. 그러느라, 몇 번 튕겼다가 받은 건 예삿일이고. 곧장 휴대폰의 전원을 꺼버린다.)
(얼른 잘 자라고 머리 좀 더 쓰다듬어 준다.)
전원 버튼을 누르느라 정신이 없었던 당신은, 전원이 꺼지기 직전에야 통화의 발신인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전원을 꺼 버린 순간 곧바로, 침대 옆 협탁에 위치한 전화가 다시 울리기 시작합니다.
('케일럽?' 잠깐만⋯)
(케일럽의 휴대폰, 어디있지?)
그는 잘 때 항상 머리맡에 휴대폰을 두고 자는 중독자에 가까웠는데요.
랜들 록스버그:(그러면⋯ 본인의 휴대폰을 쥐고⋯)
(협탁의 전화를 받는다. 끊기기 전에.) 여보세요?
「전화 왜 안 받아? 집이야?」
⋯ ⋯ ⋯.
케일럽⋯?
케이, 너야?
「삼십 분이면 도착한다고.」
랜들 록스버그:무슨 소리야? 너 지금 어딘데?
케일럽 랜킨:(수화기 너머로 당황한 듯한 숨소리가 들린다.)
「너야말로 무슨 소리야? 오늘 할 일 있어서 잠시 밖에 나갔다 온다고 했잖아.」
「집 근처에. 삼십 분⋯⋯ 음⋯⋯ 브라운 청과점 지나고 있어.」
너 지금 내 옆에서 자고 있었잖아.
여기 있는 건 누군데?
케일럽 랜킨:(간헐적으로 들리던 숨소리가 뚝 그친다.)
(곧 바람이 스치는 소리와 함께 바스락거리는 잡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수화기 너머의 그─케일럽일까?─는 뛰기 시작한 것 같다.)
「랜들.」 (목소리는 평정심을 잃었다.)
「그거 나 아니야.」
「침대 안으로 다시 들어가.」
「빨리!」
뭐?
그럼 침대 안으로 다시 들어가면 안 되는 거 아냐?
너 뭔데?
케일럽 랜킨:(빠듯해지는 숨소리.) 「
들어가라고!」
「내 말 들어!」
(달음박질하듯 호흡이 점점 거칠어진다.) 「그리고 절대로 눈 뜨지 마.」
「나 금방 가. 진짜 금방 가니까⋯⋯.」
네가 진짜인 걸 어떻게 알아?
「들으면 몰라!?」
랜들 록스버그:그러니까, 그건 여기도 있다고!!
(헉. 무심코 커진 목소리에 뒤를 돌아본다. 다시 입을 틀어막았다.)
KP:당신의 옆에서 자고 있는
케일럽 랜킨은 미간을 세차게 구긴 채 뒤척거리고 있습니다.
이대로 큰 소리를 계속해서 냈다간 잠에서 깨 버리고 말 겁니다.
케일럽 랜킨:「헉, 후⋯⋯ 랜들⋯⋯ 내, 내 말⋯⋯.」 (중간중간 숨을 고르느라 말이 끊긴다.)
「내 말 들어. 응?」
「침대 안으로 다시 들어가.」
「다시 들어가서 자는 척 하고 있어.」
「그러면, 헉, 그러면 그, 그게, 곧 너를 깨우거나⋯⋯」
「눈을 뜨게 하려고 들 텐데.」
「뜨지 마.」
「내 말 알아들어?」
「알아듣냐고!」 (다시 수화기 너머 목소리가 커진다.)
랜들 록스버그:뭐라고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다.
너랑은 말이 안 통해. (그냥 끊었다.)
⋯ ⋯.
(그리고 얌전히 침대로 가서 눕는다.)
KP:당신은 고분고분합니다. 그의 말을 들어준 건지 원래 침대로 갈 생각이었던 건지는 몰라도, 하여간에 당신은 다시 침대에 누웠습니다.
랜들, 이성치 체크.
그리고 동시에, 잠들어 있는 케일럽 랜킨에게 관찰력 판정이 가능합니다.
(저는 케일럽을 사랑하니 좀 더 보겠음)
전화를 받으러 가기 전까지만 해도 분명 편안하게 웅크린 자세였던 케일럽 랜킨은⋯⋯ 부자연스럽게 경직된 자세로 바뀌어 있습니다.
그는 이질감이 들 정도로 반듯하게 누워서 팔다리를 적당히 벌리고 있는데, 꼭 빳빳한 짚인형처럼 보입니다.
하여간에, 옆에 당신이 누울 공간이 충분하긴 합니다만은, 그는 평소에 저런 자세로 잠들지 않습니다.
(그제야,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랜들은 그 밀짚인형 옆에 눕는다. 그리고 몸을 웅크린다. 눈까지 꽉 감고 있었다.)
지금부터 타임어택 30분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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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일럽 랜킨?:(그리고, 당신이 침대에 기어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소리가 들린다.) ⋯⋯랜들?
어디 갔다 왔어? (목소리에선 졸음이 뚝뚝 떨어진다.)
(일단은 눈을 감고 버틴다. 잠에 든 척한다.)
(그의 손이 이불 더미를 짚는다. 당신의 어깻죽지 즈음이다.) 자?
안 자는 거 알아.
(뒤척이다가 이불을 자신의 머리끝까지 뒤집어쓴다.)
(슬금 손이 이불을 쥐어챈다.) 왜.
아니, 왜? 삐졌어? (당혹스러운 듯 애매한 목소리가 나온다.)
(목소리 들으니까 또 진짜 같아.)
(아닌가⋯ 너무 다정하지 않나?)
(이렇게까지 다정했었나⋯⋯?)
(일단 이번에도 무시.)
(손이 이불 속으로 들어간다. 서늘한 손이 당신의 뺨에 닿는다.) 나 잠이 안 와.
너 때문에 깼잖아⋯⋯ 바스락거려서.
(생각해 보자⋯)
(케일럽 정말 나간 일정이 있었던가?)
KP:그런 이야기를 했었던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이야기를 안 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애초에 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긴 했는지가 전혀 기억나지 않습니다.
안개 낀 듯 머릿속이 흐리멍텅합니다. 무언가 당신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지금 케일럽 랜킨은 내가 알고 있는 케일럽 랜킨과 닮았나? 숨기는 것 하나 없는 목소리야?)
(난 케일럽 랜킨을 사랑하는데⋯)
(내가 걜 제일 잘 알아.)
당신 정말 그를 잘 알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나요?
KP:그러니까, 둘은 열한 살 이후 이십사 년간 몰이해만을 차곡차곡 쌓아올린 관계가 아니었습니까?
위화감이 느껴지는 듯, 아닌 듯. 이전과 같은 듯, 아닌 듯.
목소리만 들어선 확인할 수 없습니다. 눈을 뜨고 제대로 표정을 본다면 모를까⋯⋯.
(뺨에 닿았던 손이 쿡, 쿡, 당신을 찌르기 시작한다.) 잠이 안 와.
케일럽 랜킨?:(쿡.) 처방받은 수면제, (쿡.) 어디에 뒀더라.
랜들 록스버그:(눈만 안 뜨면 되는 거 아니야?)
랜들 록스버그:(눈만 안 뜨면 될 것 같아.
1 1. 맞아! 2. 아니야...)
(입을 우물우물대다가⋯ 손가락으로 서랍장 쪽을 가리킨다.) 저기에 있어.
케일럽 랜킨?:어⋯⋯ 그랬나. (손장난은 멈추지 않는다. 쿡. 쿡⋯⋯)
(그러다 일순, 당신은 얼굴에 신선한 공기가 들이닥치는 것을 느낀다.)
(그가 이불을 걷어 버렸기 때문이다.)
안 자잖아.
잠 안 올 것 같은데. 산책하러 갈래?
랜들 록스버그:왜 그렇게 깨우려고 해? 나 피곤해.
너도 잠이나 자.
(숨소리가 가까워진다. 아마 그는 지금쯤 당신의 얼굴에 제 얼굴을 바싹 들이밀었을 것이다.) 산책 가자.
랜들 록스버그:(씨발. 케일럽 이 새끼는 도대체 언제 오는 거야?)
(그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이.) 나야.
랜들. 나.
첫 키스했던 장소 대봐.
갑자기 이런 걸 묻는다고? (목소리가 삐딱해진다.) 날 누구랑 착각하고 있는 거야?
호텔 옥상.
케일럽 랜킨?:뭘 좋아해? 다 사소한 걸로 트집 잡았잖아. (손이 슬금슬금 잠옷 아래로 기어든다.)
(그가 당신을 간지럽히기 시작한다.)
랜들 록스버그:(정답이네⋯ 아, 아, 잠시만.)
(나는 운이 좋아서 이런 간지럼에 1 1. 끄떡없다. 2. 눈을 떠버렸다.)
(눈만큼은 절대로 뜨지 않고 있다.) 치워⋯!!
⋯⋯어느 순간, 당신은 조금 전부터 느끼고 있었던 열기가 거짓이 아님을 감지합니다.
뜨거운 열기가 사방에서 당신을 압박하기 시작합니다.
코끝에 미약한 탄내와 썩은내가 맴돌기 시작합니다. 절로 인상이 찌푸려집니다.
(목소리는 이내 다급해진다.) 랜들. 잠깐만.
일어나 봐. 집에 불.
불 난 것 같아. 야!
일어나라니까!
왜 눈 안 떠? 너 뭐 하는데!
(갑자기 뜨거워졌다. 징조도 없이 화마가 어떻게 방을 덮친단 말이야? 이건 거짓말이야⋯.)
(착각일 거야. 무슨 술수를 쓴 거야.)
(⋯정말로?)
케일럽 랜킨?:(그러자 다시 바스락대는 소리.) 랜들⋯⋯,
왜 안 일어나는 거야? 불, 불 났다니까.
나 무서워⋯⋯. (목소리가 훅 가까워진다.)
일어나⋯⋯.
(그런데 말이야⋯)
(그 모든 것과 별개로.)
(무서워서 내 이름을 부르는 케일럽 랜킨은 조금⋯)
(⋯ ⋯ ⋯하하.)
(아하하하.) 옆에 누워.
케일럽 랜킨?:(대답 대신에, 당신은 호흡이 가까워지는 것을 느낀다.)
(코끝이 맞닿는다. 그는 지금쯤 당신의 위에서 고개를 숙여 들이밀고 있을 것이다.)
(화한 민트 냄새가 났다. 둘이 함께 사용하는 치악의 향이다.) 왜?
이대로 타죽자고?
내가 여기서 타 죽자고 해도 그러자고 할 사람이야.
⋯ ⋯아마도.
미안, 확신은 없어.
겁먹지 마. 안아줄게.
케일럽 랜킨?:(이 즈음 당신은 상반신에 체중이 가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가 당신의 양 어깨를 짚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입술이 살짝 깨물린다.) 너.
오래 살아 달라면서. 나한테.
바로 엊그제도 그렇게 말했잖아. 그런데 겁 먹지 말라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 (사실 겁을 먹은 건 나야.)
(랜들 록스버그가 가진 공포는 거시적이다. 눈앞에 있는 케일럽 랜킨이 진짜일까? 가 아니라.)
(케일럽 랜킨이⋯)
(내가 상상하던 그가⋯ 사실 그가 아니게 된다면?)
(내가 전부 착각하고 있었던 거라면?)
(도대체 무엇을 믿을 수⋯ ⋯ 아.)
(그래, 그렇지.)
(행운은 언제나 나의 편. 1 1. 뜬다. 2. 아니다.)
행운을 믿어볼까요? 아니면 당신 위의 케일럽을?
누가 더 변하지 않을 당신의 편에 가깝다고 생각하나요?
케일럽, 넌 이제 나 안 믿지?
(아주 가깝다. 입술이 거의 닿다시피 하고 있다.)
(그래서, 말하는 내내 그의 입에서 당신의 입으로 단어를 흘려넣는 듯한 모양이 된다.) 나?
믿지⋯⋯.
내가 널 왜 안 믿어?
랜들 록스버그:내가 보잘것없고, 한심한 랜들 록스버그인데도?
케일럽 랜킨?:네가 보잘것없고, 한심한 랜들 록스버그인데도.
우웩. 토 나와.
너 때문에 잠 다 깼어. (눈을 뜬다.)
⋯⋯⋯⋯⋯⋯⋯⋯⋯⋯.
(몰라. 사랑해서 전부 떴어.)
KP:확실히 랜들 록스버그, 당신은
보잘것없고, 한심한 랜들 록스버그가 맞는 것 같습니다.
과연 당신은 멍청하고, 바보 같고, 아둔하고, 무능하고, 그래서 늘 많은 일을 망치곤 합니다.
그런데, 그래도,
그럼요. 아무렴요. 당신이 어떤 존재이건 관계없이,
행운은 언제나 당신의 편이죠.
40분 경과. 타임어택 종료.
알다시피, 누구에게나 비밀번호를 누르는 고유한 패턴이 있습니다.
그의 경우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덟 자리 비밀번호를 세 자리, 네 자리, 그리고 마지막 한 자리로 끊어서 잠시간의 텀을 두고.
그건 마치 홍채나 지문과도 같아, 다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각자의 고유한 것이라.
당신은 자각합니다. 지금 당신 위에 있는 그것은 가짜입니다.
그러나 눈을 떠버린 당신은, 하여간에, 보아선 안 될 것을 보아 버렸습니다.
거대한 짚인형이 산발이 된 핏빛 머리를 한 채 당신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눈이 있어야 할 곳엔 못으로 헤집어 놓은 듯한 커다란 구멍 두 개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직후, 온몸이 불타는 듯한 강렬한 통증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동시에 현관문이 활짝 열리고 발소리가 들립니다.
당신의 위에 올라타 있던 그것이 순식간에 눈 녹듯 액체로 변해버립니다.
기분 나쁘게 끈적한 밀랍이 썩은 짚과 뒤엉켜 역한 고무 냄새와 탄내를 풍기며 당신의 위로 쏟아집니다.
적어도 화재는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정말로 위협적으로 솟구치는 불길이 집안 전체를 휩쓸고 있어요.
랜들, 야!
나와! (그는 숨을 몰아쉬고 있고, 땀에 젖어 엉망이다.)
(슬리퍼로 갈아신지도 않고 신발 차림 그대로 성큼성큼 뛰어 들어온 그가 당신의 팔을 확 잡아챈다.) 나와, 빨리!
씨발 타죽고 싶어!? 나니까 눈 떠!
랜들 록스버그:(이제 랜들은 케일럽 랜킨을 바라보고 있다⋯)
(손을 맞는다. 아는 체온이다.)
(미안, 솔직히 말하겠다. 아직도 확신이 안 선다.)
(그냥 자신을 끌어주는 진짠지 가짠지 모를 그의 손을 잡고 뛴다.)
(그냥 시키는대로⋯ 그러고 싶어서.)
케일럽 랜킨:(그는 아주 힘껏, 힘껏 당신을 잡아당겼고, 그래서 당신의 손목엔 손자국 모양대로 멍이 남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하지 않다. 그가 있는 힘껏 당신을 붙들고 달려 나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달려 나가는 와중에도 짚인형 두 개를 꺼내 불길을 향해 휙 던져 버렸는데,)
그 순간 소름 끼치는 굉음이 집안을 가득 채웁니다.
마치 집 전체가 비명을 지르는 듯한 끔찍한 소리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런던 한복판인지라 소방차는 금방 도착했고, 둘은 가벼운 타박상을 입은 게 전부였습니다.
탄내 대신 개운한 공기가 머릿속을 맑게 합니다. 아마도요.
화끈거리는 손바닥과 붙잡힌 손목, 그 사이로 느껴지는 체온 따위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악몽이 가십니다. 정체를 알 수 없었던 케일럽 랜킨은 사라졌고,